안녕하세요, 씨앗님 🌿
이 글을 읽으면 나카이 다케노신이 누구인지, 왜 그의 이름이 우리 식물 학명에 그토록 많이 남았는지, 그리고 이 문제를 단순한 선악 구도로만 볼 수 없는 이유까지 균형 있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 시리즈에서 몇 번이나 등장한 이름이에요.
금강초롱꽃에서도, 섬기린초에서도 계속 마주쳤던 이름.
나카이 다케노신 (中井猛之進, 1882~1952) .
이제 이 인물을 제대로 들여다볼 시간이에요.

🌿 나카이는 누구인가
나카이 다케노신(中井猛之進, 1882~1952)은 일본의 식물분류학자입니다.
1882년 일본에서 태어났고, 도쿄제국대학에서 식물학을 공부하며 분류학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이후 도쿄대학 교수, 고이시카와 식물원장, 일본국립과학박물관장 등을 지냈습니다.
그는 한반도 식물 연구와 관련해서도 중요한 흔적을 남긴 인물입니다.
1909년 이후 여러 차례 한반도를 조사했고, 제주도와 울릉도를 포함한 여러 지역의 식물을 채집·기록했습니다.
이런 연구와 채집은 당시 식물분류학의 중요한 기반 자료가 되었습니다.
1927년에는 「조선삼림식물편」을 간행하며 한반도 식물에 대한 체계적 정리를 시도했습니다.
다만 이 업적은 순수한 학술 성과로만 볼 수 없고, 식민지 권력 구조와도 연결된 작업이었습니다.
그래서 나카이를 평가할 때는 학문적 공헌과 식민지적 맥락을 함께 봐야 합니다.
💡 얼마나 많은 식물에 이름을 남겼나
한국 특산식물의 60% 이상에 그의 이름이나 흔적이 있어요.
학명은 보통 속명 + 종소명 + 명명자 순으로 표기되는데, 우리나라 특산식물 가운데 상당수에 그의 이름이 명명자 자리로 남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미선나무나 병꽃나무처럼 한국 고유 식물들 중에도 학명 끝에 Nakai가 붙은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그가 해당 식물을 처음 학술적으로 정리하고 발표한 인물이라는 뜻입니다.
즉, 현재 우리가 보는 학명에는 식물 자체의 이름뿐 아니라 그 식물을 분류한 학자의 흔적도 함께 남아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이 있어요.
나카이는 자신의 성 외에도, 일본에서 유명했던 다른 인물들의 이름을 한국 자생 식물의 학명에 넣었어요.
금강초롱꽃에 하나부사 요시모토의 이름을 붙인 것처럼요.
🎯 그는 정말 혼자 이 일을 한 걸까
여기서 놓치기 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나카이가 한반도 식물을 조사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개인적 의지만으로만 설명되지 않습니다.
당시 일본 학계의 연구 체계와 조선총독부라는 식민지 행정 구조가 함께 작동한 결과였습니다.
그를 조선으로 처음 파견한 사람은 도쿄제국대학의 식물학 교수 마츠무라 진조(松村任三)였어요.
그리고 조선총독부에서 나카이를 촉탁으로 임명해 한반도 전역의 식물조사를 허용한 사람은 당시 조선총독이었던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였어요.
즉, 나카이 한 사람의 개인적 야심이 아니라 일본 학계와 조선총독부라는 국가 권력이 함께 만든 구조였다는 거예요.
이 지점은 많은 콘텐츠에서 잘 다뤄지지 않아요.
"나카이가 우리 꽃 이름을 빼앗았다"는 서사는 임팩트 있지만, 그 뒤에 있는 학계와 식민 통치 시스템까지 함께 봐야 이 문제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어요.
💡 나카이를 보는 두 가지 시선
나카이에 대한 평가는 완전히 갈려요.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은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식물의 창씨개명을 한 식물의 제국주의자라는 비판을 받아요.
반대로 일본에서는 근대 식물분류학을 개척한 인물로 추앙받아요.
실제로 그가 남긴 「조선삼림식물편」은 지금도 한반도 식물 연구의 기초 자료로 쓰이고 있어요.
학명은 정치적 선언이 아니라 학술적 기록이라는 점도 생각해볼 지점이에요.
이명법(binomial nomenclature)에서 명명자는 그 종의 특질을 처음 식별하고 논문으로 발표한 사람을 적는 규칙이에요.
나카이가 실제로 그 작업을 한 것은 사실이에요.
문제는 그 작업이 이루어진 시대적 맥락, 그리고 그 이름이 왜 하필 하나부사 요시모토 같은 인물을 기리는 데 쓰였는가에 있어요.
🌿 이 이름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
이름을 안다고 학명이 당장 바뀌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나카이라는 이름을 그냥 “일본 이름이 붙었다” 정도로만 넘기는 것과, 그가 누구였고 어떤 시스템 속에서 이런 작업을 했는지 이해하는 것은 전혀 다르거든요.
이 시리즈가 계속 나카이라는 이름으로 돌아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한 사람의 이름을 알면, 그 이름이 남긴 수많은 식물들이 왜 지금의 이름을 가지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는 열쇠가 생깁니다. 그리고 그 열쇠는 단순히 식물 이름만이 아니라, 식민지 시기 학문과 권력의 관계를 함께 보게 해줍니다.
씨앗님은 나카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 문제는 비난과 옹호 중 하나만 고르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맥락까지 함께 읽어야 더 정확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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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자료
- 위키백과, 「나카이 다케노신」
- 아틀라스뉴스, 「우리 식물 학명에 붙은 나카이는 누구인가」, 2025
- 거제도 이야기, 「한반도 식물 연구와 '나카이'」
본 글에서 인용된 모든 자료의 출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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