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야가 한창인 여름밤이에요.
에어컨을 켜놓고 이 글을 쓰고 있어요.
바깥은 뜨겁고 습한데, 산 속 서늘한 곳에서 자라는 꽃 이야기를 하려니
묘하게 위안이 되네요.
지난 서문에서 던졌던 질문, 기억하시나요?
"왜 우리 꽃에 일본 사람 이름이 남았나."
오늘은 그 대표 사례, 금강초롱꽃으로 답해볼게요.
금강초롱꽃의 학명에는 왜 하나부사라는 이름이 들어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조선 초대 일본공사의 이름을 딴 것이에요.
그 이유와 배경을 하나씩 짚어볼게요.

금강초롱꽃은 어떤 식물인가
금강초롱꽃은 초롱꽃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이에요.
한국에서만 자라는 고유종이고, 그것도 아주 특별한 위치에 있어요.
금강초롱꽃속(Hanabusaya)은 한국 고유 속 7가지 중 하나예요.
전 세계에서 이 속에 속하는 식물은 오직 이 한 종뿐이에요.
1속 1종이라는 희귀성, 이것만으로도 이 꽃이 왜 중요한지 알 수 있어요.
꽃은 연한 자주색 통꽃이고 아래를 향해 피어요.
꽃받침이 5개로 갈라지고, 길이는 약 4.5cm.
초롱을 닮은 그 모양 때문에 초롱꽃이라는 이름을 얻었어요.
자생지는 경기도 용문산·화악산·명지산, 강원도 치악산·오대산·설악산, 그리고 북한의 금강산까지, 한반도 중부의 높은 산에만 살아요.
학명에 새겨진 이름: 하나부사
여기부터가 이 글의 핵심이에요.
금강초롱꽃의 학명은 Hanabusaya asiatica (Nakai) Nakai예요.
속명 Hanabusaya는 하나부사 요시모토(花房義質, 1842~1917)의 이름에서 따왔어요.
하나부사는 조선의 초대 주한일본공사를 지낸 인물이에요.
이 학명을 지은 사람은 일본의 식물학자 나카이 다케노신이에요.
조선총독부의 지원을 받아 한반도 식물을 연구하던 중, 과거 초대 조선 공사를 지낸 하나부사를 기리기 위해 그의 이름을 속명으로 삼았어요.
종소명도 마찬가지예요.
asiatica는 "아시아산"이라는 뜻일 뿐, 발견지인 조선을 전혀 담고 있지 않아요.
정리하면, 이 학명 전체에 한국이라는 흔적은 어디에도 없어요.
한국에만 사는 고유종인데, 이름은 온전히 일본 인물과 지역 범위로만 채워진 거예요.
하나부사는 어떤 인물이었나
하나부사 요시모토는 1880년 초대 주한일본공사로 임명됐어요.
서울에 일본 공사관을 상주시킨 인물이에요.
1882년 임오군란 당시 일본 공사관이 습격당하자 탈출했다가, 이후 일본군과 함께 다시 조선에 들어와 제물포조약과 조일수호조규속약을 체결시켰어요. 이 조약으로 일본군의 한성 주둔이 허용됐고, 조선은 배상금을 지불해야 했어요.
즉 하나부사는 단순한 외교관이 아니라, 근대 한일관계에서 일본의 정치적 영향력을 확장한 인물이에요.
그의 이름이 한국 고유종의 학명에 남았다는 것이, 왜 문제로 여겨지는지 이 배경을 알면 더 선명해져요.
광복 이후, 이름은 어떻게 됐나
광복 이후 국내에서는 하나부사의 한자어를 그대로 따서 "화방초"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했어요. 하지만 학명 자체는 바뀌지 않았어요.
흥미로운 건 북한의 반응이에요.
북한은 금강산 묘길상 부근의 금강초롱꽃 군락을 자체적으로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어요.
그리고 1976년부터, 하나부사야(Hanabusaya)라는 속명 대신 금강산이아(Keumkangsania)라는 새 속명을 사용하기 시작했어요. 남한은 국제 학계의 학명을 그대로 유지하지만, 북한은 아예 다른 이름 체계를 만든 거예요.
같은 꽃을 두고 남과 북이 서로 다른 학명을 쓴다는 사실, 이것도 이 꽃이 품고 있는 또 하나의 역사예요.

지금 금강초롱꽃의 상황
금강초롱꽃은 국제자연보전연맹(IUCN) 적색목록에서 위기종(EN) 으로 평가받고 있어요.
국립수목원은 최근 금강초롱꽃 자생지 1,085.1㎢를 국제적으로 보전이 필요한 핵심 생물다양성 지역(KBA)으로 지정했어요.
강원도 양구군을 포함한 13개 시·군이 여기 포함돼요.
참고로, 이 꽃이 국내 문화재 개념의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는 정보를 접하신 적이 있다면, 정확히 짚어드릴게요.
남한에서는 금강초롱꽃 자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지 않아요.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보호하는 쪽은 북한이에요.
국립공원 치악산에서는 금강초롱꽃을 깃대종으로 삼고 있어요.
그 지역의 생태를 대표하는 상징종이라는 뜻이에요.
이름은 바꿀 수 없어요.
그런데 그 이름을 알고 나면, 다음에 이 꽃을 만났을 때 그냥 예쁜 보라색 꽃이 아니라, 훨씬 많은 것을 보게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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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편: 우리 식물 이름 속 역사 - 나카이 다케노신 완벽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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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자료
- 위키백과, 「금강초롱꽃」
- 위키백과, 「하나부사 요시모토」
- 국립수목원, 「멸종위기종 금강초롱꽃·개느삼 자생지 KBA 지정 보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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