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씨앗님들 🌺
지난 편에서 진달래와 철쭉을 구별하는 방법을 살펴봤죠. 오늘은 그중에서도 철쭉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철쭉의 학명을 따라가다 보면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나게 됩니다. 학명에는 19세기 조선 동해안을 탐사했던 러시아 해군 장교의 이름이 남아 있고, 철쭉의 독성은 실제 가축 중독 사례를 통해서도 확인된 바 있습니다.
꽃은 아름답지만 먹어서는 안 되는 꽃, 그리고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이름의 역사까지 따라가 보면 꽤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식물입니다.

🌺 철쭉이라는 이름에는 어떤 뜻이 있을까?
철쭉이라는 이름은 한자어 척촉(躑躅)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척촉은 ‘머뭇거리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로, 철쭉의 아름다운 꽃을 바라보느라 사람이 걸음을 멈춘다는 이야기와 연결되기도 합니다. 한편으로는 철쭉의 독성 때문에 동물이 이 식물을 먹고 제대로 걷지 못하거나 가까이 가지 않았다는 이야기와도 연결됩니다.
다만 여기에는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옛 문헌에서는 진달래와 철쭉을 가리키는 이름이 지금과 다르게 사용되거나 서로 혼용된 사례가 확인됩니다. 국립국어원 자료에서도 《훈몽자회》 등 옛 문헌에서 ‘척촉’, ‘양척촉’, ‘산척촉’, ‘진외’ 등의 이름이 오늘날의 진달래·철쭉과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척촉이라는 이름은 정확히 이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생겼다’고 단정하기보다는, 척촉이라는 옛 이름과 철쭉의 독성, 그리고 걸음을 머뭇거리게 한다는 의미가 함께 전해져 왔다고 이해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철쭉을 흔히 ‘개꽃’이라고 부르는 것도 진달래와의 대비에서 나온 이름입니다. 그 외에 참철쭉, 철죽나무, 철쭉꽃, 철쭉나무, 함박꽃, 흰철쭉으로도 불린답니다.
진달래가 먹을 수 있는 꽃이라는 의미에서 ‘참꽃’으로 불린 것과 달리, 철쭉은 식용하지 않는 꽃이라 ‘개꽃’이라고 불렀습니다.
🔬 학명 속에 남은 러시아 해군 장교
철쭉의 학명은 Rhododendron schlippenbachii Maxim.입니다. 현재 국제 식물 데이터베이스에서도 이 학명이 정식으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눈에 들어오는 이름이 바로 schlippenbachii입니다.
이 이름은 러시아 해군 장교이자 남작이었던 알렉산더 폰 슐리펜백(Baron von Schlippenbach)의 이름에서 유래했습니다. 그는 1854년 조선 동해안 탐사 과정에서 식물 표본을 채집했고, 이후 이 식물의 학명에 그의 이름이 남게 됐습니다. 당시 러시아 탐사선 팔라다(Pallada)의 조선 동해안 탐사와 관련된 기록에서도 슐리펜백의 식물 채집이 확인됩니다.
그리고 이 표본을 바탕으로 식물학자 카를 요한 막시모비치(Carl Johann Maximowicz)가 1870년에 Rhododendron schlippenbachii라는 학명을 발표했습니다. Kew 자료에서도 이 학명의 최초 발표 연도를 1870년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식물을 채집한 사람과 학명을 정식으로 발표한 사람이 서로 달랐다는 것입니다.
발견과 채집에는 군인이, 학명의 정식 발표에는 식물학자가 관여한 셈이죠.
앞서 이 시리즈에서 다뤘던 해국에서도 막시모비치가 등장했는데, 이번에는 또 다른 한반도 식물의 학명에서도 그의 이름을 만나게 됩니다.




🌿 철쭉은 어떤 식물일까?
철쭉은 진달래과(Ericaceae) 진달래속(Rhododendron)에 속하는 낙엽관목입니다. 학명은 Rhododendron schlippenbachii Maxim.이며, 영어로는 Royal azalea라고 부릅니다.
주된 자생 범위는 한반도를 비롯해 중국 동북부와 러시아 극동지역, 일본 일부 지역까지 이어집니다. 따라서 ‘한국에서만 자라는 식물’이라고 표현하기보다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동북아시아에 분포하는 식물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합니다.
높이는 환경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보통 1~2m 정도로 자라며, 크게 자라면 4~5m 안팎에 이르기도 합니다.
꽃은 연분홍부터 분홍색, 흰색까지 다양하고, 꽃잎 윗부분에 붉은색 또는 갈색 계열의 반점이 나타나는 것이 특징입니다. 꽃은 잎이 나오기 직전이나 잎과 거의 동시에 피는 편입니다.
그리고 철쭉을 직접 관찰할 때 재미있는 특징 하나가 있습니다.
어린 가지와 꽃자루가 끈적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특징 때문에 꽃을 가까이에서 관찰하다 보면 잎이나 꽃뿐 아니라 줄기와 꽃자루의 질감도 함께 살펴볼 수 있습니다.
⚠️ 철쭉은 왜 먹으면 안 될까?
철쭉에는 그레이아노톡신(grayanotoxin)과 관련된 독성이 있어 식용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단순히 ‘독성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는 수준의 이야기도 아닙니다.
실제로 철쭉을 섭취한 동물에서 중독과 폐사가 보고된 사례가 있습니다.
2017년 《한국동물위생학회지》에는 철쭉(Rhododendron schlippenbachii)을 섭취한 흑염소에서 발생한 그레이아노톡신 중독 사례가 보고됐습니다. 3년생 흑염소가 폐사하기 전날 철쭉을 섭취한 사실이 확인됐고, 식욕부진, 무기력, 과다 침 분비, 보행 이상 등의 증상을 보였습니다. 부검 및 검사 과정에서 위 내용물에서 그레이아노톡신이 검출됐고, 연구진은 그레이아노톡신 중독으로 진단했습니다.
철쭉류를 먹은 가축에서 중독이 발생한 사례는 이 논문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2009년에는 철쭉 가지를 섭취한 면양과 한국재래산양에서 식욕감퇴, 침흘림, 구토, 호흡곤란, 비틀거림, 서맥 등의 증상이 나타났고, 산양 한 마리가 폐사한 사례도 보고됐습니다.
사람에게도 예외는 아닙니다.
철쭉꽃을 먹은 어린이에게 의식 저하와 섬망이 나타난 사례가 학술지에 보고되어 있고, 성인이 Rhododendron schlippenbachii 꽃을 섭취한 뒤 저혈압과 서맥 등의 중독 증상을 보인 사례도 보고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산에서 예쁜 철쭉을 만났다고 해서 꽃잎을 따서 맛보는 일은 피해야 합니다.
철쭉은 보는 꽃이지, 먹는 꽃이 아닙니다.
📜 《헌화가》의 꽃은 정말 철쭉이었을까?
철쭉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삼국유사》의 〈헌화가〉가 떠오릅니다.
〈헌화가〉에는 수로부인이 절벽에 핀 꽃을 보고 갖고 싶어 하자, 한 노인이 높은 절벽으로 올라가 꽃을 꺾어 바쳤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래서 흔히 이 꽃을 철쭉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한 가지 구분이 필요합니다.
〈헌화가〉의 꽃이 오늘날 식물학에서 말하는 철쭉이라는 사실이 원문에 명확하게 적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래된 문헌에 등장하는 식물 이름이나 꽃을 오늘날의 특정 식물 종과 정확하게 대응시키는 데에는 해석의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헌화가〉에 등장하는 꽃은 철쭉이다’라고 단정하기보다는 철쭉으로 해석되어 왔다는 견해가 있다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이렇게 보면 〈헌화가〉의 이야기는 오히려 더 흥미롭게 느껴집니다.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전해진 한 편의 노래 속 꽃이 오늘날 우리가 산에서 만나는 어떤 식물과 연결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재미있는 일이니까요.
🌺 철쭉을 기억하는 다섯 가지
① 철쭉의 학명은 Rhododendron schlippenbachii Maxim.입니다.
② 종소명 schlippenbachii는 1854년 조선 동해안 탐사 과정에서 식물을 채집한 러시아 해군 장교 슐리펜백의 이름에서 유래했습니다.
③ 철쭉은 한반도를 비롯해 중국 동북부와 러시아 극동지역, 일본 일부 지역에 분포하는 동북아시아 식물입니다.
④ 그레이아노톡신과 관련된 독성이 있으며, 철쭉을 먹은 사람과 가축에서 실제 중독 사례가 보고되어 있습니다.
⑤ 《삼국유사》의 〈헌화가〉에 등장하는 꽃을 철쭉으로 보는 해석이 있지만, 현대 식물학적으로 특정 종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진달래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름의 역사부터 독성, 학명에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꽤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꽃이 바로 철쭉입니다.
산에서 철쭉을 만났을 때는 꽃만 보고 지나치지 말고 잎과 꽃이 나오는 시기, 꽃잎의 반점, 그리고 어린 가지의 끈적한 느낌까지 한번 살펴보세요.
씨앗님들은 철쭉을 직접 만져보신 적 있으신가요?
진달래와 철쭉을 헷갈렸던 경험이 있다면 댓글로 함께 나눠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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