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씨앗님들 🌱
이 글을 읽으시면 봄 정원 가드닝이 우울감과 스트레스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과학적 근거와 원예치료 전문가들의 시각, 그리고 제가 직접 농학을 공부하며 정원에서 겪은 변화를 함께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요즘 "왜 이렇게 기운이 없지", "사람 만나기가 무거워", "일 다 마쳤는데도 허전해" 하는 느낌, 씨앗님들도 낯설지 않으시죠? 저도 그랬어요. 23년 디자인 실무를 이어오면서 성과는 쌓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내가 무엇을 위해 이걸 하는지 흐릿해지는 그 시기가요.
그 무렵 농학을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흙을 손에 쥐었고, 씨앗을 심었습니다. 그리고 3개월 뒤, 무언가 달라졌다는 걸 느꼈어요. 화면이 아닌 흙냄새를 맡으며 앉아 있는 그 시간이, 그동안 찾아 헤매던 '쉬는 것'에 가장 가까웠습니다.
오늘은 이 경험이 단순한 기분 탓이 아니라는 것을 - 원예치료(Horticultural Therapy)의 실제 연구와 함께 - 씨앗님들과 나눠볼게요.

🌱 흙을 만지면 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까
가드닝이 기분을 좋게 한다는 건 많이들 직관적으로 느끼시죠. 그런데 이게 단순한 '힐링 기분'이 아니라 생리적으로 실제 일어나는 반응이라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영국 브리스톨 대학교 연구팀은 토양 속에 존재하는 박테리아인 Mycobacterium vaccae가 세로토닌 분비를 촉진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 세로토닌은 우리가 흔히 '행복 호르몬'이라 부르는 신경전달물질이에요. 항우울제의 주된 작용 기전이 바로 세로토닌의 재흡수를 억제하는 것임을 생각하면, 흙을 만지는 행위 자체가 일종의 자연 항우울 효과를 낼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더불어 가드닝은 코르티솔(스트레스 호르몬) 수치를 낮추는 데도 효과가 있습니다. 네덜란드 바헤닝언 대학교에서 진행한 연구에서는 스트레스 과제 이후 30분간 정원 가꾸기를 한 집단이 독서를 한 집단에 비해 코르티솔 수치가 더 빠르게 회복되었고, 기분도 더 긍정적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저도 농학 실습에서 흙을 처음 직접 만지던 날을 기억해요. 그냥 이유 없이 어깨가 내려앉는 느낌이었달까요. 이제 그게 왜인지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 원예치료 - 감성 취미가 아닌 임상적 접근
원예치료(Horticultural Therapy, HT)는 식물을 매개로 인간의 신체적·정서적·인지적·사회적 기능을 증진시키는 목적 지향적 치료 활동입니다. 이미 미국, 영국, 일본, 한국에서 병원, 요양시설, 정신건강 클리닉에 도입된 정식 치료 프로그램이에요.
한국원예치료복지협회에 따르면, 원예치료는 농업활동을 통해 사회적·교육적·심리적·신체적 적응력을 기르고 심신을 향상시키는 전문 분야로 정의됩니다. 단순히 꽃을 예쁘게 가꾸는 것이 아니라, 심기–돌보기–수확이라는 목적 지향적 사이클이 자존감과 성취감을 자극하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임상 연구 측면에서도 의미 있는 결과가 있습니다. 국내에서 진행된 원예치료 관련 논문들에서는 우울증 환자 및 노인 집단을 대상으로 원예치료 프로그램을 적용한 결과, 우울 척도 점수 감소와 삶의 질 지수 향상이 유의미하게 나타난 사례가 다수 보고되었습니다.
특히 주목할 지점은 '식물을 돌본다'는 행위 자체가 주는 효과입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자기효능감(Self-efficacy)' - 내가 무언가를 해낼 수 있다는 믿음 - 이 가드닝을 통해 조용하게 회복됩니다. 씨앗을 심고, 물을 주고, 싹을 확인하는 그 작은 반복이 "나는 무언가를 성공적으로 이루어가고 있다"는 신호를 뇌에 꾸준히 보내거든요.
사회복지학을 공부하면서 이 부분이 특히 마음에 남았어요. 요양시설이나 지역아동센터 현장에서 원예 프로그램이 단순한 여가 활동이 아니라, 정서 조절과 자존감 회복의 도구로 기능한다는 걸 배웠습니다. 그 맥락을 이해하고 나니 제 정원 가꾸기의 의미도 새롭게 보이더라고요.
🌸 왜 하필 '봄'인가 - 계절이 마음에 미치는 영향
봄이 유독 우울감과 연결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계절성 정서 장애(Seasonal Affective Disorder, SAD)는 겨울에 일조량이 줄어들면서 세로토닌 분비가 감소하고 멜라토닌이 과도하게 분비되어 발생하는 우울 패턴인데요. 겨울을 지나고 봄이 오면 빛이 늘어나면서 이 균형이 다시 맞춰지기 시작합니다.
흥미로운 건, 이 전환 시기에 자연과 접촉하는 행위가 회복 속도를 높여준다는 점이에요. '주의 회복 이론(Attention Restoration Theory)'을 제시한 카플란 부부(Rachel & Stephen Kaplan)의 연구에 의하면, 자연 환경은 직접적 주의를 요구하지 않는 '매혹적 자극(Soft Fascination)'을 제공해 정신적 피로를 효과적으로 회복시킵니다. 봄 정원의 새싹, 꽃봉오리, 흙냄새가 딱 그런 자극이에요.
실제로 정원에서 봄 파종 준비를 하고 있으면, 생각이 단순해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 씨앗을 몇 mm 깊이로 심을까', '이 자리에는 햇빛이 몇 시간 드나'. 일상의 걱정들이 그 순간만큼은 비껴가는 느낌이요. 이게 마음챙김(Mindfulness)과 같은 메커니즘으로 작용한다는 게 연구자들의 해석이기도 합니다.
🎯 지금 시작할 수 있는 '마음 정원' 실천 루틴
이론보다 중요한 건 실천이죠. 씨앗님들께 바로 적용 가능한 루틴을 정리해볼게요. 꼭 넓은 정원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루틴 1: 아침 5분, 식물과 대화하기 화분 하나로 충분합니다. 아침에 일어나 물을 주면서 새 잎이 나왔는지, 뿌리가 건강한지 살펴보는 5분. 이 작은 관찰 루틴이 하루를 자연의 속도로 시작하게 만들어줍니다. 허브 화분 하나를 베란다에 두는 것부터 시작해 보세요.
루틴 2: 흙을 직접 만지는 주 1회 가드닝 장갑 없이 흙을 손으로 만지는 경험을 주 1회 이상 의도적으로 가져보세요. 텃밭 상자, 베란다 화분 분갈이, 씨앗 파종 등 어느 형태든 괜찮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M. vaccae의 세로토닌 유발 효과는 흙과 직접 접촉할 때 더 활성화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루틴 3: 성장 기록 남기기 식물이 자라는 과정을 사진 한 장, 한 줄 메모로 기록해 보세요. 이게 굉장히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기록이 쌓이면 "내가 이 작은 생명을 일주일, 한 달, 두 달 돌봤다"는 시각적 증거가 됩니다. 이 누적이 앞서 말씀드린 자기효능감의 토대가 됩니다. 우울감이 깊을수록 자신이 아무것도 해내지 못한다는 느낌이 강해지거든요. 식물 기록이 그 감각을 조용히 반박해 줍니다.
🌱 마무리하며
오늘은 봄 정원 가드닝이 우울감과 스트레스에 미치는 효과를, 뇌과학과 원예치료의 시각에서 함께 살펴봤어요.
흙 속 박테리아가 세로토닌을 자극하고, 식물을 돌보는 사이클이 자기효능감을 회복시키며, 자연의 매혹적 자극이 정신적 피로를 풀어준다 - 이 모든 것이 봄 정원에 함께 들어 있습니다. 제가 농학을 공부하며 처음 흙을 만지던 날의 그 감각이, 지금은 학문적 언어로도 설명이 되는 경험이 되었네요.
씨앗님들도 이번 봄, 화분 하나라도 손에 흙을 묻혀보시길 바랍니다. 거창하지 않아도 됩니다. 작은 씨앗 하나가, 마음을 천천히 바꿔나가거든요.
더 궁금한 점이나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시면 댓글로 편하게 남겨주세요 💚
📚 참고자료
- Lowry, C.A. et al., "Identification of an immune-responsive mesolimbocortical serotonergic system", Neuroscience, 2007
- Van Den Berg, A.E. & Custers, M.H.G., "Gardening promotes neuroendocrine and affective restoration from stress", Journal of Health Psychology, 2011
- Kaplan, R. & Kaplan, S., The Experience of Nature: A Psychological Perspectiv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9
- 한국원예치료복지협회, 원예치료 개요
- 김수진, "원예치료 프로그램이 노인의 우울 및 삶의 질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메타분석", 한국원예학회지, 2022
본 글에서 인용된 모든 자료의 출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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